2012년 6월 3일 일요일

제3일_태안(Taian), 곡부(Qufu)



태산에서의 둘째날. 여행 3일차.

결국 태산 호스텔에서는 혼자 잤다. 룸메가 두명있다고 했는데, 저녁에 들어오지도 않고,ㅋㅋㅋ6인실을 1인실처럼 쓰는 행운을.

오늘은 태산에서 대묘를 오전에 본 후,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곡부로 갈 예정이다.



아침식사. 어제 돌아다니는 길에 봐 두었던 집에 가서 두개를 샀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주머니가 영어를 조금 하시고, 매우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나라 야채호빵 같은 느낌의 교자로 야채와 고기 속이 들어 있다. 두개 먹으니 배가 부르다.



교자집에서 같이 파는 음료수. 뭔지 모르고 그냥 샀는데, 팥음료 비슷하다. 팥을 끊인 듯 따뜻하고 약간의 단맛이 난다. 맛은 괜찮았다. 가격은 2원 정도. 약 400원.ㅋ 아침을 해결하는데 1000원이 들지 않았다.



대묘 앞에 "행궁"이라는데 써있는데 도교 사원이란다. 여기서부터 대묘인줄 알고 매표를 어디서 하나 어리둥절하다가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표가 필요없단다.


들어가니 안에는 빠지지 않고 향불을 올리는 단과 복을 비는 사당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보인다. 중국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장면이어서 새삼스럽지 않다.


앞의 행궁을 지나 뒷문으로 나오면 드디어, 대묘가 나온다. 대묘는 그냥 하나의 성 같았다. 10미터 정도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 안의 공간도 상당히 넓다.

대묘 앞의 석방의 양간된 용의 모습. 이 석방은 청나라 강희제때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손으로 꼽는 석방이라는.


대묘의 입장권. 30원이다. 어제 태산의 입장료의 임팩트가 있어서 인지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뭐 이정도면 수긍하겠다는 채념비슷한 마음으로 가볍게 구매.


대묘 남문 성루에서 바라본 대묘의 모습. 멀리 뒤로 태산의 모습이 보인다. 중국에서 황색은 황제를 위한 색이다. 그래서 황제에 동급, 또는 그 이상을 위한 건물에만 황색기와를 사용하는데, 대묘는 황제보다 한 단계 위인 신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황색 기와를 얻고 있다.


대묘 성벽 누각의 모습. 겹쳐진 지붕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대묘는 성벽을 올라 한바퀴 돌수 있다. 하지만 볼 건 별로 없다.


대묘의 성문을 지나면 처음으로 보이는 "배천문". 하지만 안에는 쌩뚱 맞게도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배천문 건물은 미술작품 전시로 사용되고 있다. 북한 화가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다. 그냥 북한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공간.

대송동악천자인성제. 송대의 비석, 송나라 진종이 태산신을 "천자인성제"로 봉한 것을 기록한 비석이다. 뒷면에는 명나라 때 세겨진 "오악독종"이라는 글씨가 붉은 색으로 입혀져 있다.
대묘안에는 이런 비슷에 봄날 미친 개나리마냥 흐드려쳤이다.;;;; 수많은 황제들이 자신의 공덕을 뽐내고자 비석들이 서있다.

대묘 안 동남편에 위치한 한백원의 한백의 모습. 한백은 한나라 무제가 심었다는 5그루의 측백나무. 한 무제가 심었으니 수령이 약 2100년이나 되었다. 한무제가 심었기에 인상적이라고는 하나 생각보다 감흥은 없다.
 한백원 벽면에는 이러한 비석들을 장식품인듯 벽면 가득히 채우고 있다. 특별한 설명도 없고, 시간의 풍파에 많이 흐릿해져 알아보기 힘들다. 금석학자였다면 흥미로워했을 듯해보이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조금 의하한 모습.

 한백원에서 한백정으로 가는 중문. 문각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백루의 모습. 최근에 다시 다시 중수한 듯이 외관이 깔끔하다. 특이한 점의 뒤로 보이는 한백루의 주칠된 사각기둥이 돌로 되어 있다는 점. 주칠이 두껍게 칠해져 있어 나무기둥인줄 알았는데, 주칠이 벗겨진 모습을 보니 돌이다.

한백정 북쪽으로 동어좌의 건물군이 보인다. 동어좌는 청나라 때 대묘의 봉선을 하러온 황제와 관리들이 머물던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황제의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황색기와를 얹지 않은 것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대묘가 황제보다 한급위의 태산신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황제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 같다.


대묘에 3대 보물이 있다고 하는데, 항상 온기가 돈다는 온량옥, 사자모양의 침향나무에 조금의 손질을 더했다는 침향사자, 마지막으로 신비한 빛깔을 가진 호로병 3가지라고 한다. 위의 사진은 그 중에 온량옥. 만져서 확인할 수 없기에 눈으로만 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크고, 관리도 허술해 보여서 진품일까 하는 의구심마져 들게 한다.
이것은 침향사자. 정말 사자처럼 생겼다.

대묘 서편 라인의 태산지층공원박물관이었던 것 같다. 이름이 확실하지 않은데, 안에 들어가면 태산의 암석, 식생 등을 수집 전시하고 있다. 생각보다 사람이 없고 한산하다. 영어설명도 거의 없어서 별 의미없이 자나치고 왔다.


박물관 안에서 그나마 가장 인상적이었던 태산의 모형. 박물관임에도 내부가 너무 어두워서 감도를 올려 사진을 촬영했더니 사진이 조금 흐릿하다. 어제 올랐던 태산의 홍문길을 한번 보며 감흥을 느꼈다. 오악지존이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산세가 아름답다는 생각은 안든다. 우리나라의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비해서 그리 산세가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지만,  16일동안 중국 동북부를 돌아다니며 펼쳐진 평지를 보며 태산의 위용을 세삼 느끼면서 중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느낄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묘의 중심라인에서 배천문, 인천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대묘의 본전인 천황전이 나타난다. 천황전은 중국의 고건축물 중에서 유일하게 그 건립연대가 미상인 건물로 그 크기와 중첩된 지붕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안에는 태산신상과 벽면을 가득 채운 벽화가 보인다.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원을 주고 비닐 신발을 사야하는데, 비닐신발을 신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들어가보지는 않고 밖에서만 바라보았다.

 천황전 옆 양 회랑에는 태산과 대묘에 관한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 비석의 영어설명이 있어서 편하지만, 느므느므 많아서. 다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묘를 다 보고 나서 다시 정문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와 짐을 챙겨 곡부로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이동. 하지만 이번엔 가이드북이 날 물먹었다. 태산에 2개의 버스터미널(신, 구)이 있고, 두 군대다 곡부로 갈 수 있다고 설명해 놓았는데, 특히 신 터미널에 가면 곡부로 가는 버스가 많다고 해놓았는데. 빌어먹을 신 터미널을 찾아가니 매표원이 친히 구 터미널로 가라고 적어준다;;;;; 신 터미널도 버스를 타고 찾아갔는데 몾찾아서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는데...다시 구터미널로 가란다. 결국 구터미널로 택시타고 이동. 겨우 버스를 탔다. 처음으로 중국에서 버스를 타는 거라, 그 악명을 자자히 듣던처라 걱정이 좀 들었다. 곡부는 태산과 약 1시간정도의 거리. 그래서 우리나라 시외버스처럼 지정좌석이 아니다. 출발시간도 정확치 않아서 어느정도 사람이 타면 출발한다. 태산에서 대묘까지는 23원. 약 4500원 정도.

 태산 구 터미널 안의 모습. 오른편 멀리 검색대가 보인다. 중국은 터미널, 기차역, 중요시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검색대의 검색수준은 그냥 장식 수준. 물론 조금 신경써서 하는 곳도 있지만 지방의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는 수준이다.


버스시간이 어중간했기 때문에 터미널에서 빵과 홍차를 한병 샀다. 빵은 그냥 소보로 빵과 비슷. 홍차는 레몬티 비슷하다. 맛은 쏘쏘.

 곡부에 도착. 곡부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한 컷. 여기서도 가이드북이랑 맞지 않아서 당황. 곡부버스터미널이 이동해서 이제는 곡부성 남문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각에 있었다. 조금 당황했지만 대충 시내쪽으로 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곡부성으로 이동.

곡부 성 내부의 시가지의 모습. 곡부는 옛 곡부성을 중심으로 남쪽, 동쪽으로 신시가지를 이루고 있다. 공묘와 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곡부성내에서는 공부 동편의 고루 길을 중심으로 번화가를 이루고 있다.
곡부의 남쪽의 성문. 이름은 잘 모르겠다.


곡부성의 옛 해자.

우선 숙소에 짐을 풀고, 공묘를 관람하기로 한다. 곡부에는 공자를 모신 사당인 공묘와, 공자의 후손들이 살던 공부, 그리고 공자의 가족묘인 공림 3가지가 핵심적인 관광지인데, 공묘를 우선 보기로 한다. 공묘의 정문격인 양성문. 성문위의 "만인궁장" 붉은 글씨의 편액은 청 건륭제의 친필이라고 한다. 옹성의 형태로 한국의 어지간한 군사용 산성만큼 높고 견고해 보인다.


양성문을 지나면 오른편으로 매표소가 있다. 이 앞을 지나면 드디어 가이드들이 달라 붙는다. 가이드를 해 주겠다는 호객을 하는데, 처음에는 어떤 아기씨가 친절히 다가와 친절히 매표소로 안내해주길래 뭔가했더니, 날 중국인으로 보고 가이드해주겠다고 다가왔던것. 중국어를 못아듣는다고 영어로 몇마디 했더니 영어로 가이드 해주겠다고 해서 당황했지만 필요없다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는;ㅋㅋ

공묘, 공부, 공림의 통표. 150원. 미친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중국인들도 이 가격에 사니 군말없이 샀다. 다행히도 이 표의 유효기간은 하루. 이틀에 걸쳐서 3곳을 보면 된다. 혹시나 통표의 유효기간이 하루면 어쩌나 했는데, 기간으로 24시간이란다. 오늘은 공묘만 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구매.



영성문의 모습. 영성문을 중심으로 앞뒤로 2개의 석방이 더 있는데, 총 3개의 석방이 줄지어 서있다. 영성문 사이로 멀리 "태화원기"라고 적히 석방이 보인다. 뒤로 보이는 태화원기 석방은 청나라 가정제때 건립된 것.


지금의 대묘의 크기는 청나라 때 완성된 것이다. 대묘는 2500년의 역사 속에서 계속 그 크기가 켜져 왔는데, 후대로 올 수록 황제들이 경내를 넗혀나가면서 그 크기가 커져왔다. 홍도문은 명나라 주원장 때 건립된 문이다. 홍무문이라는 이름은 청나라 때 옹정제가 "논어"의 人能弘道, 非道弘人(인능홍도, 비도홍인)(사람이 길을 넓혀가야지 길이 사람을 넓힐 수는 없다.)의 앞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홍인문의 도리의 모습의 인상적이다. 지붕을 높이 올리기 위해 도리를 중첩해서 올리고 있다. 시간의 깊이를 알려주듯 도리의 단청이 바랜 모습이 최근에 보수된듯 색이 짙은 기둥의 단청과 대비된다.

 홍도문을 지나면 대중문까지의 정원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계속해서 대묘의 경내를 외각으로 문을 지어 널혀온 터라 문과 문 사이는 건축물이 없다. 그냥 정원 같은 공간.

 대중문의 모습. 대중문은 북송 때 건립되었다고 한다. 북송 때까지는 대중문이었으나 이제는 중간문이 되어 있다. 대중문의 펴액은 청 건륭제의 친필.



 동문문. 동무문은 특이하게 문만 있고, 문 옆으로 벽이 없다.
동무문을 지나면 규문각이 나온다.
 규문각의 모습. 규문각은 편액은 안쪽에 있는데,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규문각은 황제가 하사한 서책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현재에는 그 서책들이 없다. 20세기 중반 중국을 열병처럼 휩쓴 문화대혁명 때 홍도병들에 의해 불태워졌다고 한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문화대혁명의 파고를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은데 곡부는 그 문화대혁명의 파고를 가장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곳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문화대혁명. 그 목적과 정치적 의미는 뒤로 하더라도 중국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역사적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된다. 왕조 교체기에 당연히 격는 구습타파의 한 장면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중국 역사의 가장 큰 단층선을 만든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규문각을 돌아나오면 뒤로 비정들이 줄지어 서있다. 총 13개의 비정이 좌우 두줄로 서있는데, 역대 황제들이 공자의 업적으로 칭송하거나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들을 모아둔 곳이다. 각 시대의 비석들을 모아 두었는데, 그 숫자도 많고 비석의 모양도 다양하다. 역시 금석학자들의 천국은 중국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비정안의 비석들의 모습. 비석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은 강희제가 세운 6.5m, 35t의 비석이라고 하는데, 북경에서 만들어져서 3개월에 걸쳐서 곡부로 이동되었다고 한다. 워낙 비석들이 많아서 직접 찾아보지는 못했고, 설명도 부족해서 좀 더 알아보고 올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비정들을 지나치면 뒤로 대성문이 나타난다. 대성문은 맹자의 "孔子之謂集大成(공자지위집대성)(공자 같으신 분을 집대성했다고 하는 것이다.)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공묘의 건물이나 문들의 편액은 모두 안쪽에 달려 있어서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원래는 북송 때 건립되었으나 중간에 소실되어 청대에 중건되었다.


 대성문의 기둥. 돌에 용이 양각되어 있다. 서람들이 얼마나 만졌는지 용의 비닐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냥 아름답다고 밖에 표현할 방도가 없다. 내가 본 그 어떤 기둥보다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있다 대성전의 기둥을 본 순간. 두번째로 밀리게 된다.

대성문의 중첩된 도리들. 사각의 도리들이 중첩되어 큰 지붕을 받치고 있다. 지붕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위로 갈수록 각을 좁혀가며 도리가 걸리고 있다. 안쪽으로 올려진 다포양식의 공포도 보인다.

이 문을 지나면 대묘의 가장 핵심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대성문에서 대성전까지의 공간 양쪽에 서있는 행랑 내부의 모습. 이름이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양쪽 행랑에는 공자의 제자들과 후대의 석학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양쪽에 모셔져 있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종묘의 신위보다 더 많이 모셔져 있는 듯.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하는데, 지붕쪽은 화재의 흔적이 부재에 남아 있다. 내부가 어두운데다가 흔들렸는지 사진의 포커스가 어지럽다.;;;;;

 손자, 장자 등의 신위가 보인다. 우리가 아는 손자, 장자는 아닌 듯.ㅋ

 대성문과 대성전 사이의 행단. 행단은 공자가 제자들을 모아놓고 학문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진 건물이란다. 행단의 편액은 청 건륭제의 친필.

행단 내부의 "행단"이라 쓰인 비석.


대성전의 모습.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고건축이라고 단연 말할 수 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한동한 그 앞에서 넊을 놓고 보았다. 한국 고건축과는 또 다른 느낌의 아름다움. 자금성의 태화전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동안 웅장함에 더해 섬세함까지 갖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전면의 기둥은 돌로 되어 있다. 대성문처럼 용이 양각되어 있는데, 그 섬세함이 경탄을 자아낸다.






공자의 상이 대성전 안에 모셔져 있다.



대성전 동편에 위치한 홍성사의 모습. 홍성사는 공자의 5대조까지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그 건물의 격식을 알 수 있듯 기둥이 대성전과 비슷한 돌에 양간된 용으로 양식되어 있다. 대성전을 보고 난 후라 그 감흥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홍성사 앞 쪽에 위치한 공자의 가계도이다. 이 안쪽 면에 공자의 가계도가 그려져 있다.


가계도의 모습인데 세월의 풍파속에 잘 보이지 않는다.




공묘를 보고 나오니 4시반쯤 시간이 어중간했다. 그래서 고루 동편에 위치한 야시장을 방문했는데, 그 곳에서 간단히 먹은 국수. 20원이나 주었는데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쓴듯했다. 맛은 그냥 쏘쏘. 이름은 잘 모르겠다;;;; OO면이었는데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패스. 중국의 면은 한국의 면에 비해 조금 꼬들꼬들하다고 할까. 조금 설익은 듯한 느낌이 든다. 여러 식당에서 여러 종류의 면을 먹어보았는데 거의다 비슷하다. 면에 대해 한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식재감을 추구하는 느낌이 든다.


밥을 먹고 사먹은 아이스크림. 중국에서 이런류의 아이스크림은 1원~2원정도 한다. 맛은 뭐 한국이랑 비슷하다.

남쪽에서 바로본 고류의 모습. 고루 북동쪽으로 공부가 위치하고 있고, 그 옆으로 공묘가 있다. 중국 고건축에서 건물군의 동쪽에는 고루가, 오른쪽에는 종루가 위치한다. 절에 가든, 궁궐에 가든, 성에 가든 이 형식이 지켜진다.


내가 머물렀던 Qubu Internatioanl youth hostel.
private twin으로 예약했었는데 가격은 90원. 원화로 16000원정도였다. 원래 1층 방을 주었는데 공기가 별로 안좋아서 2층 방으로 바꿔달라해서 바꿨다. 티비도 있고, 처음으로 혼자쓰는 방이어서 편했다. 안에서 굳히 옷을 갖추어 입을 필요가 없으니.ㅋㅋ

호스텔은 머물렀던 호스텔 중에서 상급에 속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시설도 좋았다. 아쉽다면 위치가 조금 아쉽다는 점. 공부 뒤편에 있는데 주위에 택시가 잘 다니지 않고 버스 노선도 없어서 이동하기가 조금 불편하다. 공부와 공묘는 걸어다닐만 하고, 공림은 어차피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참아줄만 하다.

어중간한 저녁을 먹고 호스텔로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일기를 좀 쓰다가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고루 근처의 야식장으로 나갔다. 거리에서 양꼬치에 맥주한잔 하려고 이리저리 한참을 찾다가 겨우 노점에서 파는 곳을 발견. 양꼬치 10개에 맥주 2명을 마시고 흥건히 취해 들어와서 잠이 들었다.ㅋㅋㅋ
처음으로 먹은 양꼬치. 정말 맛있었다는. 아, 그립다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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