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제4일_곡부(Qufu), 제남(Jinan)


오늘은 어제 못본 공림과 공부를 볼 예정이다. 곡부에는 이밖에도 공자가 사랑했던 제자 안향의 묘와 그밖의 작은 박물관 등이 있지만 외형만 갖춘 유적지이기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공림은 공자의 가족묘이다. 중국의 묘지에는 등급이 있는데 총, 릉, 원, 분, 림 등을 붙있다. 그 중에 사람에게 붙이는 가장 높은 등급이 황제의 무덤에 붙이는 "릉"인데, 이 것보다 한단계 위의 등급의 무덤에 붙이는 것이 "림"이다. 즉, 황제의 무덤보다 한 등급 위의 "성인" 또는 "신"으로 추앙받는 자들에게 붙이는 최상위의 무덤 등급이 "림"이다. 중국에는 무덤에 "림"이 딱 두개 있는데 하나가 공자의 "공림"이고, 다른 하나는 관우의 "관림"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 두 군대를 다 가 보았다.

공림은 옛 곡부성에서 약 1km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곡부성 내에 있는 공묘와 공부와 걸어다니기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데, 주로 이 두 곳을 자전거 인력거로 이동한다. 나도 몇일사이 지나친 보행으로 지친발을 위해 자전거 인력거를 탔는데, 편도에 10원이 정찰제인듯 하다. 안묘 근처 숙소에서 공림에 갈때 한번, 공림에서 공부로 올때 한번씩 탔는데 그냥 10원씩 달라고 하는걸 보니 정찰제 비슷한 룰이 있나보다 했다.


지도 아래쪽으로 보이는 녹색의 사각형이 옛 곡부성의 성곽이다. 그 안에 공묘와 공부, 안묘가 위치해 있고 공림은 곡부성 북쪽으로 1km정도 밖에 위치해 있다. 지도에서 공림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곡부성의 면적보다 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어떤 황제의 릉보다 더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공림이 조성될 때는 이정도로 크지 않았는데 후대로 올 수록 황제들이 자신들의 공덕을 알리는 취지에서 계속 확장시켜 현재와 같은 크기에 다달았다고 한다.



공림의 첫 관문인 "만고장춘" 석방이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는 석주들의 조각이 참 인상적이다.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용주각의 석방 기둥은 세월의 풍파에 희미해졌지만 여전히 아름답고 생동감이 있다. 명대에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 석방 뒤로 끝이 없이 보이는 참배로를 따라 걸으면 드디어 공림의 정문이 나타난다.

석방 뒤로 쭉 이어진 길을 따라 오면 공림의 입구를 지나 참배로가 이어진다. 뒤로 지성문이 보인다.

위에서 보았듯이 공림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 한데. 공자의 묘는 다행히 공림 앞쪽에 자리하고 있다. 지성문을 들어서면 길이 세방향으로 갈리는데, 왼쪽으로 꺽으면 공자의 묘가 있는 수수교 앞에 다다른다. 사진의 뒤로 공자의 묘인 수수교가 보인다.
 수수교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공자묘가 나타나는데, 참배로 사이로 석물들이 보인다.

 뒤로 묘각(?)이 보이고, 그 앞에 문인석과 무인석이 서있다. 좌측에 있는 것이 무인석, 우측에 있는 것이 문인석이다. 여기서 살짝 당황했는데, 공자묘로 가는 길이 없는 것이다?! 묘각 주위로 담장이 쳐있는데, 들어가는 입구가 없어서 당황했다. 그래서 겉으로 돌다가 아니다 싶어 다시 묘각앞으로 와서, 사람들을 관찰하니, 묘각에 들어가 안나오는 것을 보고 알았다. 묘각 안 공자상 뒤쪽으로 돌아가면 문이 있다.ㅋㅋㅋ 한참 헤매였다는..

 무인석의 모습. 칼을 쥐고 있다.

문인석의 모습. 손에 홀을 들었다.


묘각 주위에 연결된 담장의 모습. 담장의 숫막새의 용문양이 다 다르다. 아마도 여러 세대에 걸쳐 보수 되어서 인듯 하다. 그래도 주제는 언제나 용.~


공자의 묘.
사실 묘각 뒤로 공자의 봉분만 있는게 아니다. 공자의 자손들의 묘들도 몇기 같이 모셔져 있는데, 그 중에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이 공자의 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묘를 쓸 때 봉분에 나무를 심지 않는데, 이는 나무 뿌리가 관을 파고들까봐 봉분 위로 나무를 심지 않는다. 그런데 중구인들이 심는다. 일반인들의 묘는 보지 못해서 알지는 못하나 유적지의 묘봉을 보면 크기도 크지만 그 위에 잡초처럼 자란 풀과 나무들이 관리안된 듯히 자라나 있다. 보통 이런 묘들은 묘 안에 석실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으니 나무를 심는 것일수도 있지만 하여간 한국과 문화가 조금 다르다.



중국 사람들이 공자묘 앞에서 이렇게 절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림의 많은 비석들은 이렇게 토막났던 흔적이 있다. 아마도 문화대혁명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정말 많은 비석들이 부러졌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세월의 풍파보다는 인위적인 손상에 가까워보인다. 다시한번 생각해보지만 문화대혁명은 중국 문화에서 가장 잔인했던 한 장면이 생각했다.


공자가 직접 심었다는 나무. 현재는 그 나무는 죽고 뿌리만 남았다.



공자묘를 나와 박석이 깔린 길을 걷다보면 이런 묘비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나무처럼 심겨져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같다. 현재 공자의 후손들은 70대손에 해당하는데, 정말 중국 역사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각 시대별 공자 후손들의 묘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금석학자였다면 평생을 바쳐 연구하고 싶었을 듯 하다. 내가 둘러본 곳은 주로 명, 청, 그리고 현대 중국 때 조성된 묘비들을 볼 수 있었는데, 묘비의 윗부분에 각 시대를 나타내고 있다. "대명", "대청", "중화" 등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시대를 나타내고 있는데, 왕조는 바꿔여도 공자 후손은 대대로 대우를 받아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공자의 묘를 제외한 대부분의 묘는 묘비만 달랑 있는데, 이 묘비는 특이하게도 석물과 신도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 공림은 무지무지 넓었는데, 결국 공자묘와 그 왼편 부분만 보고 결국 나오기로 했다. 발이 너무 아파서 더이상 걷는 것은 무리인 듯 싶었다. 다음에 또 온다면 그 때는 안에서 운행하는 전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림은 공자묘를 제외하고는 그냥 산책로 비슷한 느낌이 든다. 오전시간대에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넓고, 사람들도 적어서 공자묘를 볼 때를 빼고는 공림 안에서 사람을 마주치기가 힘들정도로 한적했다. 빽빽하게 심겨진 나무 사이로 질서없이 묘비들이 서있고, 그 사이로 박설깔린 인도가 있는 그냥 공원 같지만, 묘비 사이를 홀로 걷다보니 해가 떠있음에도 을씨련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공림을 나와, 다시 만고장춘방 앞에서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공부로 내려왔다. 공림에서 공부까지는 약 10분. 자전거로 천천히 이동하다 보니 그정도 걸리는 듯 하다. 아저씨가 힘겹게 자전거를 끄는 모습을 보며 좀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노력대비 높은 임금을 생각해보면 노력에 대한 대가가 크다고 볼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사실 택시를 타도 5원정도 나올것 같은데, 기본 10원에서 흥정하니 기름값, 유지비도 안드는 인력거는 상당히 높은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는 공부의 앞. 공부는 공묘와 바로 붙어 있는데, 폭은 공묘와 비슷하지만 남부의 길이는 공묘의 절반정도 한다. 공부는 공자 후손들의 종갓집이자 당대의 곡부 행정관청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의 종손들은 대대로 "연성공"이라는 작위를 받았는데, 허울뿐인 작위 같지만 곡부에 대한 자치권을 부여받았을 정도로 실권도 있었다. 그리고 왕조가 바뀌어도 연성공의 작위는 다음 왕조에 의에서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황제보다 더 좋은 작위가 연성공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론적이지만 아직도 연성공이 있는 걸 보면, 왕조는 망해도 연성공은 망하지 않는듯하다. 현재의 연성공은 1950년대 대만으로 이주하여 대만에 살고 있는데, 그 맥이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공부는 내가 가본 장원 건축의 최고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지어졌고 잘 관리되고 있었다. 



특이한 구조의 공부 건물. 특이하기보다는 실용적인 건물처럼 보였다. 대체로 동양건축을 생각하면 독채들로 구성된 건물군을 생각한다. 그래서 생활하기에 불편하고, 건물간의 이동이 실내-실외-실내의 공간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나도 불편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공부는 이러한 동양건축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을 깨어 놓은 장소였다. 이 사진은 공(工)자형의 건물의 중간 연결부인데, 그 실용성이 눈에 띄었다. 전면에서 보았을 때는 일반적인 동양건축물이지만 내부를 이러한 방법으로 연결하여 하나의 건물을 만듬으로써 건물을 쓰임새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중국 장원에 가면 어디나 있는 태호 근처에서 나온 태호석. 태호석은 중국 정원 건축에서 빠지지 않는 조형물로, 태호 근처에서만 생산된다. 중국 어느 관광지에 가도 볼 수 있다. 자금성의 후원에 조성된 퇴수산도 이 태호석을 쌓아 만들었다.


한국건축과 중국건축의 차이라 할까. 중국 건축의 실용성이라고 할까. 동양 건축에도 칸의 개념이 있지만 건물 하나가 하나의 공간을 구성하는게 일반적인데, 중국은 이를 실용적으로 칸을 공간으로 구획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는 우선 건물의 규모가 한국에 비해 크다는 점에 기인하겠지만 공간을 벽채로 구분함으로써 좀더 효율적으로 건물을 이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건물도 내 기억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이었는데, 측면 각 칸에 벽채를 걸어 공간을 활용하고 있었다.
건물 내부와 외부의 수로. 여기에 물을 부으며 벽채 안쪽의 건물 내부에서 물을 사용할 수 있다. 실용성이 돋보인다. 사람이 사는 듯한 느낌이 있다고 할까..

사각의 문을 넘어 원형의 문이 보인다. 동양철학의 건축적 승화라 할까.
땅에서 하늘을 본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통로. 복잡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사적 공간의 확보와 그 연결이라는 측면에서 인상적이다. 한국의 고건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공간.

공부 내 주거지역의 건물이었던 것 같다. 이층 건물이 인상적이다. 현재의 76대 연성공이 1950년대 대만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다고 하니, 아직까지 거주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한국에서는 2층의 한옥을 찾아보기란 정말 어려운데, 중국에서는 이런 2층 구조를 종종 만나볼 수 있다.
유리 넘어로 안쪽에 연성공이 사용하던 물품들과 가구들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다.

공부의 후원은 상당히 넓었는데, 연성공의 당대 위세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관리되어 있었다. 북경의 공왕부 수준은 아니지만 상당한 면적에 구성도 좋았다.

공부를 나와 영화두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영어를 못하는 종업원에게 손짓으로 대충 음식 사진 하나를 찍어 주문했다. 맛은 카레가 들어간듯 카레향이 강하다. 맛을 괜찮앗다는. 가격은 5000원정도였던걸로 기억한다.


처음에 왔던 곡부 버스터미널로 와서 제남행 버스를 탔다. 여기는 곡부 버스터미널.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옛 터미널은 폐쇄되고 공부성 서쪽에 위치한 현재의 위치로 이동했다고 한다. 곡부도 안녕. 이제 산동의 성도 제남(Jinan)으로 간다.
 제남에 도착. 곡부에서 제남까지는 약2시간 반. 중국의 버스는 정말.....욕이 나올정도로 더럽고, 덥고, 시끄럽다....빵빵 거리는 경적소리는 정말....안양갈때 경험했지만 기사의 목을 움켜쥐고 싶을 정도로 많이 울린다. 안양으로 갈 버스를 타야할 버스터미널이기 때문에 만약을 위해 찍어두었다. 택시기사한테 보여줘서 가자고 할수도 있으니....
제남에는 성도답게 버스터미널이 여러개 있는데, 관광지를 연결하는 "제남장거리터미널"을 주로 이용된다. 여기도 엄청 넓다.ㅋㅋㅋㅋ 그런데 이곳말고 6곳정도의 버스터미널이 있다고 하니...중국은 참 넓다.

제남에서는 유스호스텔을 예약하고 오지 않아기 때문에 제남역 앞에 3성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오후 3시쯤 도착한지라 어중간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제남에서 보기로 한 대명호와 천성광장을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여기는 제남역 앞 버스승강장. 뭐 사람도 많고 정차하는 버스도 다양하여 정신이 없다.

제남의 명물이라는 대명호. 그냥 호수 공원정도 인데, 호수 주면으로 놀이공원도 위치하고 있어서 주말이면 사람들이 정말 많다고 한다. 한가히 호숫가를 따라 산책을 하니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참 좋다.
대명호의 모습
시간이 어중간 했는데, 점심을 일찍 먹을 터라 배가 고파서 옥수수를 하나 사 먹었다. 3원정도 줬던것 같은데 맛은 그닥. 그냥 위장을 채우는 정도.

중국 어디를 가나 있는 복을 비는 동전 호수? 정도. 특이하게 여기는 동전이 아니라 동전 모양의 금속을 옆에서 판다. 그래서 그걸 던져서 가운데 보이는 종을 맟쳐 울리게 하면 복이 온다나....하여간 사람들이 열심히 던지고 있었다.


석양이 지는 대명호의 모습





천성관장의 모습. 천성광장은 제남시가 "물의 도시"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계획한 광장이라고 하는데 대명호의 남쪽, 표돌천의 바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중국의 광장답게 그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하는데, 서울시청앞 광장은 그냥 천성광장 모퉁이만하다;;;; 청성광장 주변으로 현대식 건물들이 올라가 있고, 쇼핑센터등이 조성되어 있다.

청성광장 내에서는 사람들이 연을 날리거나, 가족단위로 나와 휴식을 취하거나 산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남의 광장인듯.


이번 여행에서 자주 이용했던 이선생. 중국식 페스트푸드점이라고 할까. 주로 면류와 밥류를 판매하는데 난 주로 밥류를 먹었다. 맛은 그냥 덮밥수준. 좋았던 점은 야채를 이렇게 대쳐서 준다는 점. 중국 여행을 하면서 야채를 먹기가 참 어려운데, 야채를 이렇게 아무런 양념없이 준다는 점이 너무 맘에 들었다. 중국여행을 하더보면 야채도 하나의 요리로 따로 시켜야 하는데 맛이 좀 그렇다. 또 혼자서 다양한 요리를 시키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여행 중간에 야채를 흡입할 기회가 적었는데 이선생은 이렇게 청경채를 익혀 주니 땡스.ㅋㅋ

호텔 객실의 모습. 나쁘지 않은 시설이었다는. 한국의 모텔 수준이지만 깨끗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4일째도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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